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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이야기

야스쿠니 신사

태평양 전쟁에 강제 동원된 24만여 명의 조선인 중 전사자 2만 1,000여 명은 한국인 강제 동원 피해자가 아닌, 일본을 위해 희생한 일본인으로 유족의 의사와 상관없이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合祀) 했다.

 

메이지 유신 전후의 내란 때 천황을 위해 싸우다 죽은 이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1869년에 세운 '도쿄 초혼사'는 일본군(軍)의 요청으로 '야스쿠니 신사'로 명칭을 바꾸었다.

 

이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 된 조선 침략전쟁의 첫 전사자, 1875년 강화도 초지진 전투에서 조선군의 포격으로 죽은 일본 군함 '운양호'의 수부(水夫)를 죽은 이의 영혼을 불러 천황이 직접 위령한 다음에 호국의 신으로 신격화하여, 무명의 수부를 일본 호국의 신으로 부상시킨 '야스쿠니 신사'.

 

1906년부터 1911년까지 '배일', '음모' 등의 이유로 '폭동', '반란'을 일으킨 한국의 의병을 토벌하고 격퇴하고, 전사한 일본군 280명과 합사 했다고 1935년 "야스쿠니 신사" 충혼사에 기록되어 있다.

 

A급 전범인 일본군의 '도조 히데키'는 진주만을 불법 공격하고, 미군과 일반인을 살해하여 교수형을 시켰고, '히로타 고키'는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침략 정책 작성으로 교수형을 당했다. '마츠이 이와네'는 포로 및 일반인에 대한 국제법 위반으로 교수형을 당했고, '고이소 쿠니아키', '시라토리 도시오', '우메츠 요시지로'는 종신형을 당했다.

이렇게 사형으로 죽고, 종신형을 살다 옥사한 A급 전범 14명을 포함하여 전범이 아닌 '쇼와 순난자(천황을 위해 죽은 자)'로 1068명도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 하여 신격화하고 있다.

 

청일전쟁, 조선침략, 러일전쟁,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등 일본 자국이 일으킨 침략전쟁에서 죽은 250만 여 명들까지 신으로 떠받들고 있는 야스쿠니 신사! 

'야스쿠니 신사' 사헌 제 2조에는 "만세에 흔들리지 않는 태평의 기반을 열고, 그것에 의해 안국의 실현을 기여하는 것을 근간의 목적으로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