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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이야기

패션 디자이너들의 롤모델 아제딘 알라이와의 대화

V 당신은 늘 마오 재킷을 입는다.

AA 열다섯 살 때부터 마오 재킷을 입기 시작했다. 처음 엔 파란색을 입었는데 이젠 검정만 입는다. 활동하기 매우 편하다. 한 번은 친척이 생일에 돈을 보내줘서 디올 옴므 슈트를 산 적이 있는데 한 번 입고 누군가에게 줘버렸다. 난 마오 재킷이 가장 편하다. 이것 하나면 충분하다.

V 어릴 때부터 마오 재킷만 입었다면 학교에서도 눈에 띄었을 거다.

AA 별로 그렇진 않 았다. 사람들이 공장에서 일하냐고 묻곤 했지만,

 

V 어떻게 디자이너가 됐나?

AA 모든 게 아주 자연스러웠다. 처음엔 파리에 가고 싶어 1957년 튀니지를 떠났고, 파리에서 블레지에 백작 부인 등 몇몇 단골들을 위해 옷을 만들 기 시작했다. 그 옷이 잡지에 소개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나를 찾았고 1981년엔 내 이름을 걸고 확장된 컬렉션을 선보일 수 있었다.

V 80년대 그레이스 존스, 90년대 마돈나, 최근 레이디 가가까지 당대 최고의 뮤지션들이 당신의 드레스를 원한다.

AA 디자이너들은 종종 뮤즈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나는 이들 과의 관계를 인연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항상 셀러브리티들이 먼저 찾아와 인연이 시작돼 니 고마운 일이다. 레드 카펫 드레스를 의뢰하기 위해 찾아오는 경우도 있지만 뮤지션들의 경우엔 앨범의 콘셉트 자체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특히 레이디 가가는 굉장히 똑똑 한 친구다. 아직 어리지만 무적 성숙하다. 파리 작업실에 자주 놀러 와서 은 대화를 나 누고 돌아가곤 한다. 2015년 오스카 드레스 역시 수많은 만남과 대화의 결과였다. 그녀의 스타일리스트인 브랜든 맥스웰 역시 놀라운 인물이다. 보통 톱 셀러브리티의 스타일리스 트는 콧대가 높고 요구 사항이 많은데 브랜든은 전혀 그렇지 않고 인간적이다.

V 당신 앞에서도 콧대 높은 스타일리스트가 있다니 믿을 수 없다.

AA 종종 무작정 협찬 가능한 드레스를 보내라고 연락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입을 당사자가 직접 파리 아들 리에로 찾아오기 전에는 절대 드레스를 줄 수 없다고 답변한다. 대화를 나누면서 어떤 드 레스가 어울릴지 결정하고 직접 핏을 맞추는 것은 무척 중요한 과정이다

V 당신의 아카이브 전시를 본 적이 있다만든 지 30년이 지난 의상도 있었는데 보존 상태 가 매우 훌륭했다.

AA 대부분 의상을 두 벌씩 따로 보관한다. 연도별로 꼼꼼히 정리해서 아카이브를 완벽하게 보존하기 위해 노력한다.

V 모든 컬렉션을 패션 위크 스케줄과는 별개로 선보이고 있다.

AA 정해진 스케줄에 맞춰 쇼를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다. 내가 만들고 싶을 때 만들어서 공개하고 싶을 때 공개하고 있다.

 

V 여성의 보디라인을 하나의 조각품처럼 구조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컬렉션의 주제인가?

AA 조각을 전공했고 한때 조각가를 꿈꾸기도 했기에 아무래도 그런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여성의 몸 위에 실루엣을 조각하는 느낌이다.

 

V 디지털 기술이 패션계에 어떤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나?

AA 매년 상상 초월의 디지 털 신기술이 새로 등장하고 있다. 패션을 제대로 하려면 단지 패션에만 관심이 있어선 안 되고 예술, 문화, 기술 등 모든 면에서 열려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패션 디자이너들도 디지털 기술의 발전을 재빨리 받아들여야 한다. 사실 지금은 기술의 역사가 패션의 역사보다 훨씬 앞서가는 느낌이다. 패션은 다소 정체돼 있는 것 같다.

V 진짜 아름다운 드레스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나?

AA 아름다운 여성이 아름다운 드 레스를 입었을 때 더 아름다워질 수 있다면, 즉 두 가지 아름다움이 서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진정한 아름다움이다. 이때 아름다운 드레스보다 중요한 건 아름다운 여성이다!

V 아름다운 여성뿐 아니라 멋진 남성을 위한 남성복을 만들 생각은 없나?

AA 그런 거 들이 없었다. 피가로의 결혼)을 비롯한 오페라 무대의상으로 남성복을 만든 적은 있지만 기성복으로 만들 생각은 없다.

V 당신의 아카이브 컬렉션도 엄청나지만 다른 디자이너들의 의상도 수집한다고 들었다.

AA 꼼데가르송, 준야 와타나베, 크리스천 디올, 발렌시아가, 비오네, 폴 푸아레 등 소중 한 작품이 포함돼 있다. 50년대 말 파리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지난 60년 동안 패션계에서 수많은 것을 보고 듣고 경험해왔다. 그 모든 순간이 소중한데, 그중 일부라도 나만의 의상 컬렉션으로 보존할 수 있다는 것. 그게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V 당신의 이상적인 여성, 뮤즈는 누구인가?

AA 특별한 이상형은 없다. 지구 상의 모든 여 자들을 위한 옷을 만들 뿐. 모든 여자들은 각자 자기 스타일에 맞춰 입기 때문에 디자이 너라면 누구나 모든 여자들에게 사랑받는 옷을 만들고 싶지 않을까? 물론 아름다운 여성들이 내 의상을 선택해준다면 영광일 거다.

V 당신의 구두에 열광하는 팬들 또한 많다.

AA 구두를 통해 실루엣이 완성된다. 옷이 예 쁘지 않아도 멋진 구두를 신으면 아름다워 보이니까 물론 옷의 비중이 더 크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V 많은 디자이너들이 패션에서 시작해서 라이프스타일 전반을 디자인하고 싶어 한다.

AA 나는 패션을 사랑할 뿐이다. 내가 라이프 스타일 사업에 뛰어드는 것보단 멋진 아이디 어를 가진 인테리어 디자이너에게 일을 맡기는 쪽이 더 좋을 거다. 패션 디자이너라는 내 직업에 충실하고 싶다.

 

V 당신은 진심으로 일을 즐기는 듯이 보인다.

AA 늘 바쁘게 일하고 있다. 내일 당장 휴가 를 가게 된다면 해변에 누워 시간을 보내기보다 디자인에 영감을 줄 수 있는 박물관과 갤 러리가 많은 도시로 가고 싶을 정도다.

 

V 일에 집중할 때는?

AA TV를 켜놓곤 한다. 주로 동물 채널과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들 어놓는다.. 친구인 카를라 소차니의 편집 음반을 듣기도 하는데, 기분이 좋아지면 춤을 춘 다. 음악을 선곡하는 카를라에게 당신 이제 클럽을 오픈해도 되겠어!'라고 얘기하며 서로 웃곤 한다.

 

V 늘 행복한가?

AA 물론, 옷을 만드는 시간이 정말 행복하다. 컬렉션 전엔 하루 1시간 30 분에서 2시간만 잘 정도로 말이다. 평소에는 새벽 3시 전에는 잠들지 않고 늦어도 아침 8 시 전에는 반드시 일어난다.

V 많은 젊은 디자이너들이 당신을 몰 모델로 꼽는다.

AA 고마운 일이다. 요즘 패션계는 젊 은 디자이너들이 승승장구하기 힘든 구조다. 지금과 같이 무자비한 컬렉션 스케줄에 맞춰 디자인을 하려면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오기 힘들다. 모두들 부담을 많이 느낄 거다. 이 들 모두를 응원해주고 싶다.

 

V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이 있나?

AA 셀 수 없이 많다. 작업을 할 때 늘 여성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한다. 드레스 하나로 한 여자의 인생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수 있는 드레스를 만들고 싶다.

V 어떤 디자이너로 기억되고 싶은가?

AA 현실에 충실한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현실에 충실하게 살았던 디자이너 혹은 매일 새로운 것을 배운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오늘은 또 누구를 만나고, 그 사람을 통해 어떤 것을 배울 수 있 올지 기대된다. 오늘 인터뷰를 위해 당산을 만난 것 또한 새로운 배움이 될 수 있을 거다.

V 후배 디자이너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AA 디자이너로서 가장 중요한 건 여 성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좋아해야 한다는 것 그래야 여성을 위해 진정으로 아름다운 드 레스를 디자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