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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이야기

슈즈 디자이너 브루노 프리소니와 이네즈 드 라 프레상주의 토킹

※ V(vj진행자), BF(브루노 프리 소니), IF(이네즈 드라 프레 상주)를 뜻합니다.

 

V 로저 비비에 사무실로 처음 출근한 날을 기억하나?

BF 화창한 날씨라 기분이 아주 좋았다. '로저 비비에'라는 역사적인 브랜드명과 방대한 아카이브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상 태라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했다. 구두가 가득 쌓인 이탈리아 아파트를 발견한 기분? 성공해야 한다는 부담은 있었지만, 아파트의 모든 창이 활짝 열려 있는 것이 내게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의미로 여겨졌다.

IF 창문이 활짝 열린 아파트로 초대됐을 때 나 역 시 무척 즐거웠다. 나는 생전의 비비에와 잘 아는 사이인 데다 그의 구두를 매우 좋아했기 에 주저 없이 합류했다. 사실 홍보대사라는 직책은 거창하고 우스꽝스럽다. 그저 프리소 니와 함께 일하는 것이 즐거울 뿐.

 

V 일단 아카이브를 탐구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을 것 같다.

BF 로저 비비에 작품 세 계를 총망라한 1987년 회고전에 다녀온 이후 그의 디자인에 매료됐다. 당시 카탈로그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을 정도다. 아카이브를 직접 보니 그가 무척 강한 목소리로 자신의 메 시지를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비비에는 소재. 기술, 주제 등 모든 면에서 남들과 전혀 다른 시도를 즐겼다. 그래서 나는 그를 구두 장인이라고 부르길 좋아한다.

V 비굴, 메탈 버클 등 아카이브를 재해석한 요소가 특히 눈에 띄었다.

BF 아카이브에서 아름다운 것을 발견해 그대로 복제하는 것은 편한 방법이지만 전혀 흥미롭지 않다. 비 비에의 영혼과 철학을 살리는 동시에 나만의 시각으로 재해석하려고 노력한다. 그는 자유로운 마음을 유지하길 원했다. 나 역시 전적으로 동의한다.

V 당신의 로저 비비에는 어떤 브랜드인가?

BF 재미있고 섬세하며 관능적인 브랜드 부티 그를 방문하는 고객이 늘 행복하길 바라기 때문에 웃음을 줄 수 있는 구두를 만들고 실 다.

IF로저 비비에는 모두가 원하는 창의적이고 열정적인 브랜드다. 트렌드에 민감한 패션 피플들부터 나이 지긋한 할머니들까지 로저 비비에 구두를 좋아한다. 품질이 뛰어난 제 품을 만들 순 있지만 창의적으로 접근하는 일은 쉽지 않다. 뭐니 뭐니 해도 중요한 건 열 정이다. 스케이트보드를 타든, 구두를 디자인하든, 누구에게나 적용된다.

V 로저 비비에 웹사이트의 일러스트, 영상, 게임 역시 재미있고 창의적이다.

BF 웹사이트는 전부 이네즈의 아이디어다.

IF 재미있는 동시에 세련된 느낌을 원했다. 행복으로 가득 하지만 우아함을 잃지 않는 여성의 모습! 특히 '이네즈의 친구들'이란 카테고리가 인기가 많다. 전 세계 친구들이 각 도시의 재미있는 매장을 소개하는 코너다. 원래는 두세 번만 진행할 생각이었지만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 계속하고 있다. 물론 다른 브랜드의 매장도 소개한다. 진짜 우아함이란 이런 게 아닐까?

V 웹사이트의 깜찍한 패션 필름을 통해 올봄/여름/ 컬렉션을 감상할 수 있었다. 화사한 컬러와 프린트가 눈에 띄었다.

BF 모든 컬렉션은 아이디어의 콜라주다. 사진 작품에서 많은 영감을 얻는데, 이번에는 클림트 작품의 추상적인 꽃무늬와 메탈릭 한 모티브에서 시작해 다. 이를 바탕으로 환상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 예를 들어 거울을 통해 보이는 게 진실이 나 아니냐에 관해 의문을 제기하는 식이다.

V 얼마 전 공개한 가을 컬렉션은 유난히 눈부신 아이템이 많았다.

BE 중동의 시장 풍경에 서 영감을 얻었다. 보석처럼 반짝이는 것보다 실크처럼 은은하게 빛나는 느낌을 살리길 원 했다. 가죽과 메탈릭 소재를 일부러 낡은 듯 표현하기도 했다. 밥 딜런처럼 차려입은 다. 스원튼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만든 컬렉션이다.

V 이번에 론칭한 이네즈 백에 대해 듣고 싶다.

IF 비로소 내 인생이 완성된 느낌? 가랑이 나온 순간, "이제 할 일을 다 마쳤다!"라고!" 외쳤다. BF 나의 제안으로 시작된 프로젝트 지 이네즈는 이미 준비하고 있었던 것처럼 완벽하게 해냈다. 그녀를 닮아 아주 클래식하면서 도 세련된 디자인이다. 앞으로 다양한 크기와 소재, 색상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V 이네즈 특유의 프렌치 스타일이 느껴지는 기방이다.

IF 내가 쓴 <파리지엔 시크>를 읽어 보면 누구나 나처럼 스타일링할 수 있다. 당신에게도 한 권 선물하겠다.

V '로저 비비에 걸'의 일상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그녀는 어떻게 하루를 시작할까?

BF 우 선 눈 뜨자마자 시원한 물을 한 컵 마신다.

IF 그다음 아이들에게 뽀뽀한다. 구두를 신은 뒤엔 어떤 옷을 입을지 고른다.

BF 구두를 먼저 고르고 여기에 옷을 맞추는 게 핵심이다. 꽤 활동적인 여성일 것이다.

IF 게으르지만 구두를 자랑하고 싶어 어쩔 수 없이 일하러 나 가는 여성 아닐까?

 

V 그녀가 사랑하는 구두는?

IF 비비에가 발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스틸레토, 아무리 심플한 옷을 입어도 스틸레토 한 걸레만 있으면 완벽한 변신이 가능하다. 물론 반드시 뽀 족한 혈일 필요는 없다. 흔히 단신인 여자들은 높은 구두를 신어야 한다는 편견이 있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BF 이브닝 파티에는 플랫을 신는 게 더 좋을 수 있다. 모든 사람들 이 높은 구두를 신기에 오히려 낮은 구두가 눈에 될 테니 말이다.

IF 가끔 자신이 사람이 아니라 옷걸이라고 생각하는 여자들이 있다. 하지만 누구든 자유로워 보일 때 가장 아름 다운 법이다.

 

V 개인적으로 킬 힐을 좋아하지만 적당한 높이의 버귤 힐도 한 번쯤 신어보고 싶다.

BF 기쁜 소식이군. 솔직히 말하자면, 패션지에서 근무하는 에디터들부터 킬 힐을 과감하게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3.5~5cm 정도의 버귤 힐은 다리 선을 더 아름답게 만들어준다. 쉼표를 닮은 굽이 관능적인 느낌을 준다.

 

V 가방은 어떤가? 여자들이 가방에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

IF 사이즈에 상관없이 들 수 있기 때문이다. 여자가 가방을 새로 사는 일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것과 같은 의미다. 물론 합리적인 사고방식이 아니란 건 나도 잘 안다. 하지만 가방 하나로 울고 웃는 게 여자 다.

BF 이네즈처럼 완전히 자유로운 여성조차 가방을 어찌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정말 놀 라울 정도다. 그녀는 만날 때마다 새로운 가방을 들고 나오는 것 같다. 그게 어떻게 가능 한지 모르겠다. 솔직히 나는 여름에 한 번, 겨울에 한 번 가방을 바꾼다. 가방에 든 모든 물건을 어떻게 매일 옮기는지 놀라울 뿐이다.

IF 바로 그 과정이 재미있다. 옷에 어울리는 가방을 찾아 소지품을 차곡차곡 정리해 넣는 과정을 즐긴다. 가방 하나로 그날의 마음이 나 태도가 달라진다.

BF 내게 그런 역할을 하는 건 백이 아니라 헤어스타일인 것 같다.

V 로저 비비에의 구두와 가방은 디자인이 어떻게 다른가?

BE 개인적으로 구두 디자인을 더 좋아한다. 구두는 전체적인 룩의 실루엣을 바꾸기 때문이다. 구두와 가방이 기능 적은 로 달라서 만드는 방식 또한 완전히 다르지만 기본적인 접근 방식에는 차이가 없도록 노력한다.

IF 구두는 기술적 측면에서 만들기 힘든 아이템이다. 옷은 얼마든 저렴한 가격에 꽤 괜찮은 제품을 살 수 있지만, 구두는 쉽지 않다. 얼마 전 딸이 싸이하이 부츠를 사고 싶어 했다. 정말이지 며칠 동안 모든 온라인 사이트를 뒤졌지만 적당한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런 면에서 브루노는 놀라운 장인 정신으로 제대로 된 구두를 만들고 있다.

 

V 구두와 가방 가운데 딱 하나만 살 수 있다면?

IF 단연 구두 적당한 가방이 없다면 종이봉투를 들고 다녀도 충분히 멋질 수 있다. 하지만 이상한 구두를 신고 다니는 것보단 차라 리 맨발로 다니는 게 낫다.

 

V 두 사람의 대화만 들어도 서로 얼마나 아끼는지 느껴진다. 함께 일할 때 가장 좋은 점 은 뭔가?

BF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 이미 오랜 시간을 함께해왔지만, 앞으로 더 오 랜 시간을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뿐. 물론 세세한 부분에 있어 서로 의견이 다른 경우도 있다. 하지만 하우스의 비전에는 완벽하게 동의하기에 큰 문제는 없다.

IF 의견이 다를 때도 나는 늘 브루노가 옳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다. 마음속으론 동의하지 않았더라도 6개월 후에 돌이켜보면 그가 늘 옳았다. 샤넬 하우스가 라거펠트에게 모든 것을 맡기듯 로저 비비에 하우스는 브루노를 무조건 신뢰하고 따른다.

BF 디자이너들은 대체로 조언을 듣기 싫어한다. 하지만 때론 진심 어린 조언을 듣는 게 필요하다. 이네즈는 내게 많은 이야기를 전 해준다. 그것이야말로 내게 큰 도움이 된다.

IF 나 역시 그의 고객이기에 가능하다.

BF 그건 이네즈가 두려움이 없어서다. 이곳에서 나를 어려워하지 않는 유일한 사람이다

IF 브루노의 말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40년간 패션계에서 일한 사람으로서, 뭐든 고 객의 입장에서 보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를테면 내가 직접 신어보니 비나 눈 이 오는 날에는 로저 비비에를 신기 어렵다는 절 느꼈다.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브루노는 자신만의 레인 부츠를 뚝딱 만들었다. 그토록 캐주얼한 신발조차 브랜드 특유의 감성을 '담아 만드는 그의 재주가 놀라울 뿐. 그가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수시로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는 내 역할이다. 홍보대사라는 거창한 타이틀보다 요리할 때 재 료를 하나로 묶어주는 조미료처럼 브랜드의 구성원들을 하나로 연결해주는 것이 내 역할이다.

 

V 두 사람이야말로 완벽한 파트너 다과 연 패션계는 두 사람을 어떻게 기억할까?

IF 기 억하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이네즈 백이 있어 나를 기억할 수밖에 없겠지만, 이 네 조라는 인물이 영원할 필요는 없다. 다만 프렌치 시크는 영원하길 바란다. 파리에서 태어났다고 파리지엔이 아니라 특유의 감성을 지니고 있어야 진정한 파리지엔이다. 돌이켜보면 패션 계에서 많은 경험을 했고 꽤 운 좋은 삶을 살았다. 여전히 어딘가는 10대 철없는 소녀지만 이젠 두 딸의 엄마로서 온전히 행복하고 싶다.

BF 재단사인 어머니를 보며 아주 어릴 때부터 패션 안에서 꿈을 키웠다. 구두를 만든 지 3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구두를 만들 때 가장 행복하다. 앞으로도 행복한 이 일을 하며 주위에 행복함을 전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