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가 아는 이야기

(12)
우울증 자가진단과 치료방법 마음이 한 없이 무겁게 가라 앉고, 어떤 일에도 의욕이 없고, 잠을 자기도 밥을 먹기도 힘든병, 대체 우울증은 왜 생겨나는 것일까? 우리의 뇌 속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우울한 기분과 병으로서의 우울은 어떻게 다른 것인지, 어떻게 우울증을 치료해야 하는지,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울증이 보내는 사인은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우울증이 생기는 신체적 원인 우울증이나 조울증은 뇌가 감정을 통제하지 못했을 때 생긴다. 뇌에서 감정이 생겨나는 것은 신경전달물질 때문인데, 이중 '세로토닌(수면과 식욕을 조절하는신경전달물질)'과 '노르에피네프린(정서와 기억을 조절하는 신경전달물질)'은 정서와 기억, 수면과 식욕을 조절한다. 그래서 불면증과 식욕감퇴 같은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세로토닌..
마늘은 최고의 면역력 높이는 음식이자 건강 지킴이 마늘의 좋은 점은 누구나 알 것이다. 그러나 강한 향 때문에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다. 서양에서는 한국인을 비하하는 말로 '마늘 냄새가 난다'고도할 정도로 한국인들이 많이 섭취하지만, 그 때문에 거부감을 갖는 사람들도 많다. 그렇다고 다른 나라들이 마늘을 안 먹거나 심하게 기피하는 음식은 아니다. 건강을 지키기 위한 선택, 마늘 섭취 마늘은 의학계에서도 마늘의 좋은 점은 많은 연구를 통해서 밝혀졌다. 기생충을 예방하고, 강력한 해독작용으로 피를 맑게 하고, 양기를 북돋우며 면역력을 향상하는 최고의 음식으로 인정받고 있는 마늘을 건강하고 더 효과적으로 섭취하는 방법을 알아보도록 하자. 암세포를 죽이는 마늘 먹는법 마늘은 먹는 방법에 따라서 그 효과가 달라진다. 생마늘에는 항암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알리신'..
야스쿠니 신사 태평양 전쟁에 강제 동원된 24만여 명의 조선인 중 전사자 2만 1,000여 명은 한국인 강제 동원 피해자가 아닌, 일본을 위해 희생한 일본인으로 유족의 의사와 상관없이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合祀) 했다. 메이지 유신 전후의 내란 때 천황을 위해 싸우다 죽은 이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1869년에 세운 '도쿄 초혼사'는 일본군(軍)의 요청으로 '야스쿠니 신사'로 명칭을 바꾸었다. 이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 된 조선 침략전쟁의 첫 전사자, 1875년 강화도 초지진 전투에서 조선군의 포격으로 죽은 일본 군함 '운양호'의 수부(水夫)를 죽은 이의 영혼을 불러 천황이 직접 위령한 다음에 호국의 신으로 신격화하여, 무명의 수부를 일본 호국의 신으로 부상시킨 '야스쿠니 신사'. 1906년부터 1911년까지 '배..
고정된 틀을 거부하는 치토세 아베의 사카이 우먼 V 어릴 때부터 패션 디자이너가 꿈이었나? CA 초등학교 5학년 무렵 어느 일본 디자이너가 TV 광고에 나온 것을 보고 패션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처음 알았다. 막연하게 옷을 좋아하긴 했지만, 패션 디자이너란 직업을 알게 된 순간부터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다고 해두자. '리카짱(일본 바비 인형)'에게 옷을 만들어주며 꿈을 키웠다. V 당신의 패션 커리어가 궁금하다. CA 커리어의 입문은 일본의 패션 회사 '월드'였다. 그 시기에 사회인으로서의 기본을 배웠다. 상사가 한 개를 던져주면 어떻게 하면 내가 열 개의 결과를 낼 수 있을까. 이 사람은 무슨 생각으로 나에게 이런 일을 지시했을까에 대해 고민했다. 월드에서는 주로 영감을 주는 이미지를 스크랩했지만 꼼 데 가르송에 들어가자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를 ..
슈즈 디자이너 브루노 프리소니와 이네즈 드 라 프레상주의 토킹 ※ V(vj진행자), BF(브루노 프리 소니), IF(이네즈 드라 프레 상주)를 뜻합니다. V 로저 비비에 사무실로 처음 출근한 날을 기억하나? BF 화창한 날씨라 기분이 아주 좋았다. '로저 비비에'라는 역사적인 브랜드명과 방대한 아카이브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상 태라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했다. 구두가 가득 쌓인 이탈리아 아파트를 발견한 기분? 성공해야 한다는 부담은 있었지만, 아파트의 모든 창이 활짝 열려 있는 것이 내게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의미로 여겨졌다. IF 창문이 활짝 열린 아파트로 초대됐을 때 나 역 시 무척 즐거웠다. 나는 생전의 비비에와 잘 아는 사이인 데다 그의 구두를 매우 좋아했기 에 주저 없이 합류했다. 사실 홍보대사라는 직책은 거창하고 우스꽝스럽다. 그저 프리소 니와..
패션 디자이너들의 롤모델 아제딘 알라이와의 대화 V 당신은 늘 마오 재킷을 입는다. AA 열다섯 살 때부터 마오 재킷을 입기 시작했다. 처음 엔 파란색을 입었는데 이젠 검정만 입는다. 활동하기 매우 편하다. 한 번은 친척이 생일에 돈을 보내줘서 디올 옴므 슈트를 산 적이 있는데 한 번 입고 누군가에게 줘버렸다. 난 마오 재킷이 가장 편하다. 이것 하나면 충분하다. V 어릴 때부터 마오 재킷만 입었다면 학교에서도 눈에 띄었을 거다. AA 별로 그렇진 않 았다. 사람들이 공장에서 일하냐고 묻곤 했지만, V 어떻게 디자이너가 됐나? AA 모든 게 아주 자연스러웠다. 처음엔 파리에 가고 싶어 1957년 튀니지를 떠났고, 파리에서 블레지에 백작 부인 등 몇몇 단골들을 위해 옷을 만들 기 시작했다. 그 옷이 잡지에 소개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나를 찾았고 1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