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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이야기

알레산드로 델라쿠아가 로샤스를 만났을 때

V "소포모어 징크스라는 말이 있는데, 로샤스에서의 두 번째 컬렉션인 2015 S/S 시즌이 부담되진 않았나?"

AD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다. 눈으로 보거나 만질 수 없는 여성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싶었다. 가벼움, 고상함 같은 것 말이다. 두 번째 컬 렉션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건 오프닝 룩이다. 내가 표현하려는 바로 그 여성의 보습이다. 투명한 블라우스와 하늘하늘한 풀 스커트까지 말이다."

V "투명한 소재가 유난히 많았다."

AD "순수함과 수줍음, 막 깨어나는 관능미 사이에 멈춘 소녀를 상상했다. 그 순간을 포착해 옷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완전히 투명하거나 반투명한 옷감을 많이 쓴 이유다."

V "오버사이즈 실루엣이나 무거운 소재까지, 마르코 자니니 시절과 연속성 느껴진 2014 F/W 컬렉션과 크게 달라진 듯 보인다."

AD "데뷔 컬렉션은 모든 여성이 지닌 어두운 면에 관한 이야기였다. 좀 더 영화적인 접근이었다. 이번에는 가벼움에 중점 두고 스타일링했기 때문에 크게 달라진 것처럼 보일 거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는 남들과 다른 특별함을 지닌 고상한 여인들이 주인공이고 최고급 소재를 사용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V "마르코 자니니는 '로샤스 레이디를 패션을 사랑하는 로맨틱한 여성, 고급스러운 옷을 보면 그 가치를 알아채는 여성이라고 표현했다. 동의하나?"

AD "맞는 말이다. 내가 상상하는'로샤스 레이디는 자신을 사랑하고 예술과 여행을 사랑하며, 세련된 스포츠웨어도 즐 길 줄 안다. 무엇보다 섬세한 이브닝드레스를 멋지게 입을 줄 아는 여성!"

V "로샤스에서 러브콜이 왔을 때 기분이 어땠나?"

AD "2013년 어느 여름이었고 정말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연락을 받았다. 내가 후보 중 한 명이라고 했는데'너무 기대하지 말 자! 난 이제 어린애가 아니잖아라고 계속 다짐했다. 고백하자면, 아주 오래전부터 프랑스 패션 하우스의 디자이너가 되는 게 꿈이었다. 로샤스의 여성스러운 감성을 유난히 좋아한 건 두말할 것 없다. 그러니 내가 낙점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어찌나 기쁘던지! 사실 로샤 스와 나 사이엔 아주 특별한 인연이 존재한다. 25년 전, 나의 첫 스승은 디자이너 엔리카 마세이였는데 그녀의 남편 프랑코 페네가 바로 지금 로샤스가 속해 있는 '지보' 그룹 CEO 였다. 운명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디자이너로서 내 이력에 큰 을 그은 사건이다."

V "로샤스 디자이너로서 맨 먼저 무슨 일을 했나?"

AD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하우스인만큼 아카이브부터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1925년 마르셀 로샤스가 하우스를 창립해 을 때 그의 철학은 젊음, 당당함, 우아함이었다. 그의 컬렉션은 늘 스포티하고 편안한 룩과 꾸뛰르적인 이브닝 룩으로 양분됐다. 20년대 후반의 파자마 룩 34년의 '새 드레스와 라텍스 수영복, 37년의 집시 드레스, 46년부터 선보인 코르셋 등등 그의 걸작을 나열하자면 끝이 없을 정도다.

그 가운데 특히 기억에 남는 건 뭔가? AD 무슈 로샤스가 추구한 우아한 실루엣에서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나의 로샤스 데뷔작이 어떤 면에서 꽤 스포티했다면, 결국 그 실루엣을 고스란히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2015 S/S 컬렉션을 준비할 때 34년 작 '새 드레스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아카이브에서 꺼낸 벌새 무늬를 오간자에 프린트하거나 를 놓는 방식을 사용했다."

 

V "하늘하늘한 옷감 덕에 모델들이 걸을 때마다 벌새가 나는 것처럼 보였다."

AD "바로 그 느낌을 원했다. 킴 노박, 신디 셔먼 루피타 농, 스테이시 마틴 같은 여자들이 내 드레스를 입은 모습을 상상했다."

 

V "로샤스 레이디가 되기 위한 필수품은?"

AD "우아한 장갑, 안경 혹은 선글라스, 플레어스커트!"

 

V "그렇다면 N21 걸은 어떤가?"

AD "N21은 좀 더 동시대적이다. N21이 낮을 위한 옷이라면 로샤스는 밤을 위한 옷이다. N21에는 스트리트 감성이 담겨 있고 로샤스는 좀 더 영화 적이고 꿈같은 느낌이다. N21을 디자인할 땐 로샤스를 완전히 잊고 로샤스 컬렉션을 디자인할 때는 N21을 머릿속에서 깨끗이 지우는 게 내 원칙이다."

 

V "그런데도 당신이 만드는 두 컬렉션에는 공통점이 있다. 늘 낭만적인 비결은 뭔가?"

AD "전체적인 룩의 무게를 덜어내기 위해 옷감에 수를 놓고 장식을 더하거나, 소재를 어떻게 레이어드 할지 세심하게 고민한다. 그 결과로 흔히 로맨틱하다고 표현할 수 있는 룩이 완성된다. 고상하고 화려한 첫인상 그리고 가까이에서 자세히 살폈을 때 드러나는 놀라운 디 테일 또한 낭만적인 느낌의 비결이 될 수 있을 거다."

 

V "언제부터 패션 디자이너가 되길 꿈꿨나?"

AD "14세 때쯤, 영화를 무척 좋아해 자연스럽게 영화 의상에 푹 빠져 지냈다. 전설의 코스튬 디자이너 아드리안을 우상으로 여기면서 말이다. 그러다 점점 패션 전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예술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밀라노로 떠나 본격적으로 패션계에 뛰어들었다."

V "1996년 브랜드를 론칭하기까지 많은 패션 하우스에서 경험을 쌓았다."

AD "제니, 라펠 라, 보르보네제, 레코팽, 아이스버그, 말로, 브리오니 등등등 모두 오랜 역사를 지닌 패션 가 문이었고 매번 새로운 도전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한 곳에서 꾸준히 일하는 것도 의미 있지만, 여러 디자이너들과 함께 일하며 배우는 것도 필요했다. 한 곳에서 '퍼스트 어시스턴트' 위치에 오르면 다른 브랜드에서 스카우트 제안이 오기 때문에 옮기는 과정은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V "민감한 질문일 수 있지만, 괜찮다면 5년 전 '알레산드로 델라쿠아를 떠난 상황에 대해 들려줄 수 있나?"

AD "인생을 살다 보면 모든 문이 내 눈앞에서 당하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내겐 당시가 바로 그때였다. 46세의 나이에 다시 0부터 시작해야 했다. 패션계는 쉽게 잊히는 곳이다. 6개월 동안 방 안에 틀어박혀 누구와도 연락하지 않고 지냈다. 그러다 문득 이 모든 것이 나에게 새 출발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다시 20세가 된 것처럼 에너지가 샘솟았다. 이름을 잃는다는 건 아주 드라마한 경험이지만, 다행히 잘 극복해 낼 수 있었다."

 

V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당신만의 비법이 있다면?"

AD "이탈리아의 신현실주의 영화를 보거나 이른 새벽에 수영을 하러 간다. 가슴이 빵 뚫리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