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가 아는 이야기

알렉산드리아 파키네티의 우아하고 이탈이리아적인 여인 이야기

얇은 옷 위에 걸친 몸에 꼭 맞는 가죽 트렌 지 코트를 더욱 바짝 여민 탓일까?

공식적인 자리에 늘 함께하던 팀원들도, 실제로 눈에 보이진 않지만 그녀의 등 뒤에 굳건하게 존재하던 하우스의 환영도 사라졌다. 그녀는 외로워 보였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보는 이의 선입견일 뿐이다.

처음으로 서울을 방문한 알레산드라 파키네티의 미소는 섣부른 불안감을 상쇄할 만큼 충분히 환하고 아름다웠다.

 

지난 6개월 동안 온전히 내 시간을 가졌다. 최근에 새로운 곳으로 이사도 했고, 뉴욕에 머물고 있다. 아직 2~3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나는 남자 친구와 함께 맨 해튼 사우스 스트리트 시포트에 집을 마련했다.

차이나타운의 끝, 파이낸셜 디스트릭트의 시작 지점이다. 두 달에 한번쯤 시장조사를 하거나 누군가를 만나러 뉴욕에 가곤 했지만, 뉴욕 다운타운에서 아침 730분에 일어나 일상을 시작하는 건 유럽인에게 꽤 신선한 경험이다. "가능한 한 그곳에서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보려고 한다. 뉴욕이니까! 세상에,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다."  

 

내가 입고 있는 버건디 컬러 스티치 장식의 가죽 코트는 길이 잘 들어서 반들반들 윤이 난다. 이 코트는 내가 토즈에 있을 때 디자인한 것이다. 파키네티는 톰 포드가 그랬듯 구찌의 사내 정치를 견디지 못했고, 발렌티노 가라바니는 그녀가 자신의 아카이브를 참고하지 않는 데 불만을 가졌다고 알려져 있다. 꽤 힘든 상황에 놓인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번엔 어떤 문제도 없었다는 걸 확실히 해두고 싶다. 디에고 델라 발레 회장과 늘 좋은 관계를 유지했고, 그도 내가 밀라노를 떠나고 싶어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나는 토즈와의 4년 계약이 끝날 무렵 다른 곳으로 이주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파 트타임의 컨설팅으로도 충분하다면 좀 더 관계가 오래 지속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탈리아의 가죽 하우스는 가능한 한 많은 시간을 함께하며 모든 것을 지휘해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필요로 했다. 그게 전부다.

 

"삶의 한 시점에서 나 자신을 위해 작은 창을 하나 만드는 것이다. 일하는 것도 좋지만 가끔 기분 전환도 필요하니까. 새로운 영감을 얻고, 여행을 하면서 삶을 사는 게 필요한 시기다."

지금은 많은 이들, 특히 디자이너들에게 잠시 숨 돌릴 틈이 필요한 시기다. 패션 계에 폭풍처럼 휘몰아치고 있는 변화와 지각변동이 얼마나 극심한지에 대해 또다시 늘어놓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급진적인 변화의 소용돌이에서 떨어져 망중한을 즐기는 내가 가장 먼저 'See Now, Buy Now' 시스템을 시도한 인물이라는 건 의외의 사실이다. 파키네티는 2011년에 핀코와의 협업으로 '유니크니스'를 론칭했다. 이 브랜드는 온라인에서 컬렉션을 발표한 지후 사이트에서 그 컬랙션을 살 수 있도록 고안된 온라인 기반의 중저가 브랜드였다. 흥미로운 시도였지만 시기적으로 다소 일렀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이탈리아라서 더 그랬다. 8년 전이었으니 인터넷 속도가 너무 느렸다. 기술적인 문제뿐 아니라 컬렉션을 선보인 직후 판매 가능하도록 사전 제작하는 절차에서도 시행착오를 피할 수 없었다. 진취적이고 유의미한 프로젝트는 예상치 못한 문제와 파기네티의 토즈 이적이 맞물려 단기간에 소리 없이 사라졌다.

 

이른 시도는 성공과 거리가 멀었지만, 지금 패션계가 일제히 그 방향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녀에게도 놀랍기만 하다. 기본적으로 패스트 패션의 컨셉과 부합하지만, 결국엔 카테고리에 상관없이 모든 레이블이 이 시스템을 실현하게 될 거라고 그녀는 예상한다.. 중요한 건 모두가 이 시스템을 받아들이려고 한다는 사실이에요. 지금까지는 매장에서 특정 시즌의 제품만 판매했다면 이제는 시기에 상관없이 다양한 시즌의 제품 살 수 있게 될 겁니다. 앞서 경험한 자의 혜안이 궁금한 건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이 변화에 대한 의견(특히 디자이너들)은 양극단으로 갈리는 게 보통이지만, 나의 관점은 이성적이 고 침착하다. 만약 당신이 제품의 질과 브랜드의 정체성을 중요시한다면 적정한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하나의 제품을 완성하기까지 들어 가는 노력과 시간이 적을수록 당신이 기대하는 신뢰성과 가치 또한 보장할 수 없게 될 테니까. 하이엔드 브랜드도 이 시스템을 도입할 수 있다. 그렇지만 시스템에 적합하지 않은 것도 분명 존재한다. 그렇기에 이 시스템은 옳은 방식으로 운용돼야 한다.

 

이토록 신중하고 우아한 캐릭터가 자주 시작의 지점에 있었다는 건 놀랍기만 하다. 몽클레르의 꾸뛰르 라인 감므 루즈를 론칭한 첫 디자이너, 발렌티노 가라바니가 은퇴한 후 그 자리를 대체한 첫 번째 외부 디자이너, 단기간에 안정적으로 자리매김한 토즈 기성 복 컬렉션의 첫 디자이너, 아마 비즈니스맨들은 그녀에 대해 추상적인 아이디어를 안정적으로 구체화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공통적 믿음을 갖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실제로 그러하다. "레모 루피니가 했던 최초제안은 몽클레르 다운 파카의 꾸뛰르 버전을 몇 피스만 들어보고 싶다는 거였다. 아예 꾸뛰르 라인을 만들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고, 일사천리로 계획에 없던 감므 루즈 라인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확고하게 자리 잡혀 있고, 다음은 뭘 할지 예측 가능한 곳에서 일하는 건 안정적일지언정 매력적인 작업은 아니다. 나를 촬영한 사진가 레스의 표현처럼 아주 단정한 여성의 모습으로 광택 나는 대리석 복도만 걸을 것 같지만, 오히려 하이힐을 신고 비포장도로 걷기를 즐긴다는 쪽이 더 정확하다. 매번 그런 자리에 있었던 건 내가 열려 있기 때문이다. 도전적인 것, 새로운 걸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좋아한다. 단순히 옷만 디자인하는 게 아니라 컨셉을 가지고 나의 비전을 세우는 과정이 훨씬 흥분된다

 

나는 온몸과 마음을 다해 새로운 삶을 만끽하고 있다. 올해에만 보스니아 헤르체고 비나를 두 번이나 갔고 사라예보, 정말 흥미로운 곳이다. 남부 이탈리아에서 여름을 보냈으며, 재즈 페스티벌을 보러 스위스 몽트 뢰에도 갔다. 보헤미안 같은 자유로 운 삶은 그녀의 인스타그램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리고 늘 그렇듯 어떤 가능성에도 열려 있다. 실제로 곧 일어날 일처럼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가구도 좋아하니까~ 다른 업 계에서 가구 디자인 같은 걸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아직 나의 이름을 내걸고 뭔가를 시작할 생각은 없다. 어떤 제안을 받든 서두르고 싶지 않고, 시간을 갖고 결정할 작정이다."

나는 어젯밤 친구를 만나러 서울에 도착했고, 오늘 오전에는 동대문시장을 구경했다. 촬영을 위해 들른 답십리 고미술상가에서는 마치 미술관에 간 것처럼 조용히 속삭이며 오래된 목가구를 구경했다. 나는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다. 처음이지만 서울은 좋은 곳인 거 같다. 어쩌면 이곳에서 작업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